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 ~ 1938년 3월 10일)는 대한제국의 개혁, 계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순흥으로 호는 도산(島山)이며 종교는 개신교이다. 구한 말 만민공동회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배워서 익히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상하이에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또한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하여 1899년(광무 2년) 점진학교, 1908년(융희 2년) 대성학교, 1926년 중국 난징에 동명학원을 설립하였다.
흥사단, 대한인국민회 등 재미한인단체를 조직, 주관하였고, 1919년 4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주도하였다. 1921년부터는 임시정부 창조론과 개조론이 나뉠 때 개조론을 주장하였으며, 국민대표자회의가 강제 해산된뒤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미국의 한인 교포사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박용만, 이승만, 서재필 등과 경쟁, 갈등관계에 있기도 했다.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 이후 일본 제국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형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과 간경화, 폐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사망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무력투쟁론, 민족개조론, 외교독립론으로 나뉠 때 민족개조론을 주창하였으며, 민족개조론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에 의하면 스스로 힘과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기반으로 할 때만이 스스로 자립할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또한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여 경제적, 사회적인 실력을 길러야만이 독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어 교육을 통한 교육 입국론을 제창하여 각종 학교의 설립과 양성에 노력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그의 실력 양성론은 윤치호, 이광수, 최남선, 송진우, 안호상,조병옥, 김성수 등에게 두루 영향을 주었다.
웅변술에 뛰어났으며, 연설과 웅변에 두루 능통하였다. 여러 청년들을 감화시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했다. 한편 그는 이상적인 정치인으로 유길준을 지목했다. 다른 이름은 창호(昌鎬)이고, 자는 치삼, 호인 도산(島山), 산옹(山翁), 섬메, 신도생(新島生), 별명은 안광택(安廣宅), 안창호(晏彰昊)이다. 아호 도산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롱섬'에서 따서 붙인 것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도산대로(島山大路)와 도산공원은 이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평안남도 출신이다. 김현진의 문인이다.
KIIIBEROS
2013-11-19 (화) 21:50:28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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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파파
2013-11-19 (화) 16:30:00
안창호
빰빠밤~!. 하린파파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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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쿠라
2013-11-19 (화) 14:15:36
안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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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소다
2013-11-19 (화) 11:12:50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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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스
2013-11-19 (화) 11:08:29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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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Dark
2013-11-18 (월) 20:25:29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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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짱돌
2013-11-18 (월) 16:59:4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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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왕자
2013-11-18 (월) 15:05:42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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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대
2013-11-18 (월) 14:57:24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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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Kim
2013-11-18 (월) 13:06:18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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